97년작 SF호러 영화 <이벤트 호라이즌>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인 '우주' 에서오는 공포와 종교적인 영역인 '지옥' 이라는 소재를
훌륭히 섞어낸 고전 수작이다. <이벤트 호라이즌>은 우주와 지옥을 합친 호러영화라는 참신한 장르에 걸맞게 기괴하고,
천천히 구석으로 몰아가는듯 조여오는 공포로 관객들을 압도한다.
포스터에서 볼 수 있듯이 영화의 무대는 우주선 '이벤트 호라이즌' 호 다.
워프 항해 실험을 위해 만들어진 우주선인 이벤트 호라이즌호는 워프 실험도중 실종되었다가 7년만에 갑자기 나타났고
내부에서 들리는 소리를 감지해본 결과 '구해달라' 라는 한마디만 들을 수 있었고, 나사가 보낸 주인공들이
이벤트 호라이즌호에 탑승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앞서 지옥에 대해 이야기했듯이 이벤트 호라이즌 호는 차원을 넘나드는 실험도중 지옥에 떨어졌다.그 결과 우주선 자체가 살아있는 존재로 변했고, 원래 승무원들은 미쳐버려 서로를 죽고 죽이는 참상만을 남긴채 전부지옥으로 끌려가고 우주선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런 저주받은 공간에 발을 들인 우리의 주인공들 역시우주선이 만들어낸 마음 속 트라우마의 환각에 의해 하나 둘 씩 미쳐버려 죽게 된다. 이 환각의 연출은 시대를 뛰어넘었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공포스럽고, 또 고통스럽게 표현되었으며 작중 인물들이 환각에 시달려 죽어갈때 관객도 그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벤트 호라이즌>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한 불타는 차원의 문 장면으로,
이벤트 호라이즌 호의 기관실이 불타오르며 악마의 하수인이 된 위어 박사와 밀러의 마지막 결전이 일어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몇몇 인상적이었던 점을 살펴보자면 첫번째는 미술의 완성도다.
CG 기술력이 그다지 발전하지 않은 시대에 나온 영화인 만큼 대부분 세트장과 특수분장을 이용해 촬영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 세트장의 완성도, 상당히 눈에 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기관실의 구조와 실제로 움직이는 차원의 문의 모습은 웅장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항상 칙칙하고 어두운 색상을 유지하다 영화의 후반부엔
불과 함께 밝게 타오르는 차원의 문의 모습은 호러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가히 장엄하다 할 수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선장 '밀러' 를 제압한 위어박사가 보여준 지옥에서 고문받는 대원들의 환상은 가히 전율적이었다. 누군가 고어(Gore)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리얼리티' 라고 대답 할 것이다.
이벤트 호라이즌이 보여준 지옥의 환각은이 리얼리티를 착실히 지켰다. 특수분장의 완성도 부터 컨셉의 확고함까지
버릴 것이 하나 없는 장르적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재밌는 점은 앞서 말한 '환상' 과 연관된 아이러니인데.
작중 위어박사는 밀러 선장이 이벤트 호라이즌 호가 다녀온 차원을 '지옥' 이라고 칭하자 지옥은 단어일 뿐이라며
훨씬 더 끔찍한 곳이라고 일갈한다. 하지만 위어박사 역시 아직 악마에 씌인 인간일 뿐,
아직 그 끔찍한 차원을 직접 목격하거나 가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위어박사가 밀러에게 보여주는 지옥의 환상은 위어라는 한 인간의 상상에 못 미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더 넓게 보면 그 환상이 제작진의 상상력의 한계라고 볼 수도있다.
여기서 오는 아이러니가 나에겐 큰 재미를 선사했으며 또 여운을 남겼다.
위어 박사가 보여준 그 무자비하고 끔찍한 선혈들이 인간의 상상에 불과하면 그가 말한 이벤트 호라이즌 호의 종착역은
과연 무슨 모습일까, 라는 또 다른 상상을 펼치게 만들어주는 여운을 말이다.
이벤트 호라이즌은 우주공간 저 너머 존재 할 수도 있는 미지의 세계와
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 인간의 고군분투를 훌륭히 담아냈다. 만약 누군가 색다른 호러영화를 찾는다면서 내게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이 반드시 이 영화를 추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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